매출채권과 재고자산 회전율: 돈이 묶여 있는 회사를 걸러내는 체크리스트

 

역대급 매출 달성? 창고와 거래처를 먼저 확인하라

"우리 회사가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연말 실적 발표 시즌이 되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뉴스입니다. 하지만 기업 여신 심사를 담당하는 현장 실무자들은 이런 기사를 볼 때 박수를 치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먼저 보냅니다. 왜냐하면 '매출'이 늘어났다는 것이 곧 회사 통장에 '현금'이 들어왔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영업이익도 흑자인데, 정작 직원들에게 줄 월급이 밀리거나 은행 이자를 연체하는 기업이 의외로 많습니다. 벌어들인 돈이 회사 통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꽉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피(현금)를 멈추게 하는 두 가지 거대한 혈전, 그것이 바로 오늘 살펴볼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입니다.

매출채권: 받지 못한 외상값이 이익으로 둔갑하는 마법

매출채권은 기업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고 아직 거래처로부터 받지 못한 '외상값'을 뜻합니다. 앞선 연재에서 설명해 드린 '발생주의 회계'의 특징 때문에, 기업은 거래처에 물건을 넘기기만 하면 돈을 나중에 받기로 했더라도 일단 장부에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기록하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실적을 억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갚을 능력이 부족한 불량 거래처에 물건을 무리하게 밀어내기(강매) 하거나, 외상 기간을 비정상적으로 길게 주면서까지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장부상으로는 화려한 흑자 기업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회수하지 못할 악성 외상값(부실 채권)만 잔뜩 쌓여 있는 상태입니다. 흑자부도로 쓰러지는 기업들의 재무상태표를 열어보면 십중팔구 이 매출채권이 기형적으로 뚱뚱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고자산: 창고에 쌓인 먼지가 이익을 부풀리는 착시

재고자산은 아직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이나 원자재를 말합니다. 보통 장사가 안되어 재고가 쌓이면 회사의 실적이 나빠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회계의 세계에서는 정반대의 마법이 일어납니다.

공장을 무리하게 100% 풀가동하여 물건을 잔뜩 만들어내면, 제품 한 개당 들어가는 고정비(기계 감가상각비, 공장 임대료 등)가 분산되어 제품의 원가가 낮아지는 착시 효과가 생깁니다. 원가가 낮아지니 장부상 영업이익은 오히려 껑충 뜁니다. 하지만 유행이 지나거나 성능이 뒤떨어져 팔리지 않는 악성 재고는 결국 폐기 처분되거나 원가 이하로 헐값에 넘겨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장부상 영업이익을 부풀려 주지만, 결국 1~2년 뒤 엄청난 폭탄(재고자산 평가손실)이 되어 기업의 기둥을 뿌리째 흔들게 됩니다.

실전 지표: '회전율'로 기업의 소화 불량 진단하기

그렇다면 회사가 덩치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이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돈이 묶여서 억지로 늘어난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때 사용하는 실전 지표가 바로 '회전율'입니다.

  1. 매출채권 회전율 (매출액 ÷ 매출채권) 1년 동안 외상값을 몇 번이나 회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수치가 '6'이라면, 1년에 6번, 즉 두 달(60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현금을 수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 수치가 수년째 계속 낮아지고 있다면(회전일수가 길어진다면) 거래처로부터 돈을 떼이고 있거나 수금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뜻입니다.

  2. 재고자산 회전율 (매출원가 ÷ 재고자산) 1년 동안 창고에 있는 물건이 몇 번이나 싹 비워지고 새 물건으로 채워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물건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불티나게 팔려 현금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수치가 계속 떨어지면 창고에 악성 재고가 쌓이며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는 강력한 위험 신호입니다.

돈이 묶인 기업을 피하는 3단계 실전 체크리스트

관심 있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열고 다음 3가지를 기계적으로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잡한 계산식 없이 추세만 비교해도 충분합니다.

  • 1단계: 속도 비교하기 최근 3년간의 '매출액 증가율'과 '매출채권 증가율', '재고자산 증가율'을 나란히 비교해 보세요.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세 가지가 비슷한 속도로 커져야 합니다. 매출액은 10% 늘었는데 매출채권이나 재고가 30%, 40%씩 폭증했다면 무조건 투자를 멈추고 관망해야 합니다.

  • 2단계: 대손충당금 확인하기 재무상태표의 매출채권 항목 바로 밑에는 '대손충당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외상값 중 이 정도는 떼일 것 같아서 미리 손실로 빼둘게"라는 뜻입니다. 매출채권 규모 대비 대손충당금 비율이 동종 업계 평균보다 유독 높거나 급증하고 있다면, 이미 부실 거래처가 많다는 것을 회사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 3단계: 동종 업계와 회전율 비교하기 회전율은 업종마다 평균치가 다릅니다. 신선식품을 파는 기업은 재고자산 회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하고, 중공업이나 조선업은 비교적 낮습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수치보다는 경쟁사(동종 업계 타 기업)와 비교하여 회전율이 유독 떨어지지 않는지 교차 검증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핵심 요약

  • 장부상 매출과 영업이익이 아무리 화려해도, 돈이 '매출채권(외상값)'과 '재고자산(안 팔린 물건)'에 묶여 있다면 흑자부도의 위험이 커집니다.

  • 매출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급증하는 현상은 부실기업으로 가는 가장 전형적인 전조증상입니다.

  • 기업의 현금 회수 능력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매출채권 회전율'과 '재고자산 회전율'의 과거 3개년 추이와 경쟁사 대비 수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 편 예고: 돈이 묶여 있는 회사를 걸러내는 법을 아셨다면, 이제 기업을 숨 막히게 조여오는 빚의 민낯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다음 8편에서는 '단기차입금과 유동성 위기: 기업의 단기 부채 상환 능력 검증하기'를 통해 흑자 기업도 하루아침에 쓰러뜨리는 빚 폭탄의 실체를 알아보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여러분은 평소 기업을 분석하실 때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외에 창고에 쌓인 '재고'나 떼일 위험이 있는 '외상값'의 규모까지 챙겨서 확인하시는 편인가요? 겉보기에 장사가 잘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속은 곪아있던 기업을 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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